富家翁

선물을 받았다. 그런데, 본문

일상

선물을 받았다. 그런데,

DS2WGV 2005. 5. 18. 18:23
선물을 받았다.
아침부터 매일 조용하던 전화가 시끄럽게 울렸다.
수신거부등록된 전화번호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모르는 번호였다. 차 빼달라는 전화인가.(가끔씩 이사짐 차 들어오면 아침 일찍 차 빼달라는 전화가 온다.)뭔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모 택배사였고, 택배가 오전에 갈테니 어디 나가지 말았으면 한다는 택배 아저씨의 전화였다. 내가 주문한 적이 없으므로 뭔데 그러냐고 그랬더니 화장품.. 같다고 한다.
독서실 주소로 배달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오전 9시 조금 넘어 전화가 또 왔다. 지금 배달 들어간다고.
거기 사무실에 계신 분에게 맡겨 놓으라고 부탁드렸다.

그녀가 보낸 것이었다.
설렜다.
아침 일과를 마치고 독서실로 향했다.
사무실에서는 책이냐고 물었다.
책은 아니라고.. 손님이 있어서 그냥 얼버무리고 들어갔다.
오늘은 근무 교대를 조금 빨리 했다.
주간근무자가 비염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해서 1시간 반 정도 일찍 교대했다.

선물이 책 박스 위에 놓여 있었다.
책상 위의 연필꽂이에서 칼을 찾아 들고 포장을 뜯었다.
핑크색인가 회색인가, 하여간 애매모호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색깔의 박스가 나왔다.

열었다.
그냥 로션과 스킨이거니 생각했는데.
음료수병 하나, 쭉 짜서 쓰는 화장품 두 개, 스포이드 비슷한 도구 하나, 그리고 리본이 달린 은색 박스 하나, A4용지로 보이는 것을 접어 만든 쪽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작은 은색 박스에는 레이스 달린 손수건이 들어 있었다.

왜일까.
얼른 박스 뚜껑을 닫았다.
잠깐 치워놨다.

박스 열기가 두려웠고,
그 안에 있는 쪽지 보기는 더더욱 두려웠다.
정신이 혼란스러워지고,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5분여간..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다 다시 박스를 들고 뚜껑을 열었다.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폈다.
조심스레 읽어내려갔다.

사실, 누가 봐도 별 내용은 아닐 것이다.
여성용 화장품인데, 순해서 남성들도 많이 쓴다. 자기 형부도 쓴다. 뭐 이런 내용과 일상 이야기.
손수건은 여성용인데, 2개라서, 그리고 "커플" 손수건이라고 했다.
등등.

그 내용이 전부다.

그런데 우울해지는 이유가 뭘까.
내 자신이 많이 부끄러워지고, 갑자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두려워지고 무섭기만 하다.
이게 대체 뭔 감정인지 나도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냥 우울하고
그냥 무섭다.
왜지?

원인인 듯한 것 하나.
"커플"이라는 단어의 등장. 그 때문일 것이다. 동반자적 개념.
지금까지 나에게는 동반자적 개념이란 없었다.
항상 '혼자'였고, '혼자'로서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7년간의 자취 생활. 4년여간의 특이한 취미. 그런 것들이 '혼자'로서의 생활을 익숙하게 한 것이리라.
그런데, 이제, '동반자적 개념'이 등장했다.
나를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인정해 주고 있다는 것인데.

새로운 개념의 등장이 두려운 것일까.
아직 박스만 봐도 두렵다.
무섭다.
나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갑자기 두렵게 느껴진다.
...

설렘→두려움.
그래서 우울한 듯.
---------------
누가 설명 좀 해 봐요.
이게 무엇인지.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BR II  (0) 2005.05.20
Purifying Cleansing Foam  (1) 2005.05.19
을/를, 은/는  (4) 2005.05.18
날씨를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인가.  (0) 2005.05.17
Defi RPM gauge  (0) 2005.05.17
Comments